
나는 가장 어려운 인터뷰이로 감독을 꼽는다. 자기 분야에서 엄청난 전문성을 가진 사람일수록 직접 만나 이야기할때 인터뷰를 지배하며 리드해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뮤지션이나 작가 군단도 매한가지다. 내 연륜과 지식과 인터뷰 실력이 그들이 가진 내공에 비해 밀리는 것도 한 몫을 차지할 것이다.
배우, 가수, 코미디언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해봤지만 영화 감독을 인터뷰한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몇 안되는 인터뷰를 통해서 느낀 것은 "역시 만만찮은 상대"라는 것이다.
우선 영화에 대한 지식에서부터 만드는 사람과 평가하는 사람은 차이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영화라는 종합 예술을 창작하는 사람들 특유의 자부심 때문에 인터뷰가 쉽지 않다.
특히 일부 잘나가는 감독들은 비판보다는 칭찬에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이야기 곳곳에 자신의 작품에 대한 혹은 연출력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뿜어낸다. 인터뷰이의 특성을 맞춰주며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어야 하는데 자기 세계가 강한 사람일수록 그것이 어렵다.
얼마 전 장진 감독을 인터뷰했다. 영화와 관련된 인터뷰가 아니라 책과 관련된 인터뷰였다. 그는 지난 1월 '희곡집'을 낸데 이어 '시나리오집'을 냈다. 98년 '기막힌 사내들'로 충무로에 데뷔한 뒤 10년간 집필한 시나리오 중 7편을 엮어낸 책이다.
그는 책을 내놓긴 했지만 감독이 아닌 작가로서 책을 홍보하는 것을 쑥스러워했다. 개인적으로 아주 약간의 친분이 있는지라 자연스레 말을 놓으면서 인터뷰를 했는데 여전히 나는 반말이 약간은 불편했다.

그는 역시나 말발이 뛰어난 사람이다. 미디어에 비친 그의 모습은 굉장히 친절하고 재치가 넘치는 모습이지만 실제로는 시니컬한 면모도 강하다. 그러나 재담꾼임은 틀림없다. 어떤 질문이든 막힘없이 대답하고, 조금 곤란한 질문은 자연스레 피해가는 모습도 보인다.
킴: 강우석 감독님과 합작하신 작품이 흥행하고 있는데 좋으시겠어요?
장: 그거 이제 거의 끝나가잖아.
킴: 시나리오상으론 악당 정재영씨의 캐릭터가 좀 약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또 장진식 웃음이 영화적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는데..?
장: 글쎄, 내가 쓴 의도대로 봐주는 관객도 있고,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새로운 면을 봐주는 관객도 있는 것 같아. 영화는 결국 관객들이 어떻게 보냐에 따라 다른거니까.
짧은 시간 나눈 인터뷰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영화 얘기와 책 얘기를 왔다갔다 하며 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 인터뷰때는 그의 신간이 아닌 신작이길 바라며 더 많은 질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는 만만찮은 인터뷰 대상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인터뷰이임은 틀림없다. 나는 그의 오랜 팬이기 때문이다.
충무로에서 어떤 감독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난 '장진'과 '김기덕' '이창동'을 꼽는다. 이유는 하나다. 자기 색깔이 분명한 감독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두 감독의 영화는 한편도 빼지 않고 다 봤고 작품 면면의 호불호를 떠나 그들의 철학을 높이 산다.
장진은 데뷔 시절부터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충무로 입성전부터 이미 방송계와 연극계에서 재능을 인정받으며 '천재'소리를 들었다. 그런 그가 내놓은 첫 작품 '기막힌 사내들'은 쫄딱 망했다. 객관적으로 영화적 문법보다 연극과 뮤지컬을 믹스한 정체불명의 짬뽕 코미디였기 때문이다. 관객들에게 이 영화는 낯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아주 좋아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의 남다른 끼를 발견했고 신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다음 작품 '간첩 리철진'을 보면서 그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됐을때 이런 작품이 나오는구나 감탄했었다. 사람들은 장진의 대표작을 '아는 여자'로 꼽겠지만 나는 '간첩 리철진'을 꼽는다.
아쉽게도 이번책에서 두 작품의 시나리오는 빠졌다. 장진은 분량상의 이유라고 했다. 아무래도 성공작 최근작을 중심으로 묶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다음 작품은 연출이 아닌 제작이다. 박광현, 라희찬 감독을 발굴해낸 특유의 눈이 이번에도 좋은 결과를 내길 바란다. 일본 자본에 일본 배우를 쓴 영화들이라니 또 그의 색깔이 입혀지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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